[문예마당] 그녀는 수술 중
어둠에도 농도가 있지 한쪽 눈을 잃자 온전한 세상이 아닌 검은 어둠이다 어떤 위로의 말에도 세상은 흐리고 희미할 뿐 비 오는 날의 수채화를 산다 산 자와 죽은 자의 경계가 무뎌진 곳까지 심연 속에서 길을 잃고 칠흑 같던 어둠도 세월에 하얗게 바래고 외눈으로 세상 사는 법을 겨우 익힐 무렵 그 외눈까지 찾아온 암세포 의사는 초기라 달랜다 절박하다 눈물도 부정도 절망도 사치일 뿐 시간이 없다 수술대가 기다린다 다시 볼 수 없을지도 모르는 세상의 모든 아름다움을 눈에 담을 시간이 없다 많이 보고 듣고 사랑하고 나눌 시간이 뭉텅뭉텅 잘린다.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껴안고 싶은 사람만을 생각하며 수술대 위에서 스스로 눈이 감긴다 정명숙 / 시인문예마당 수술 어둠도 세월 부정도 절망도 자의 경계